우스트라사나 수련|발 위치·가슴 들어 올리기·유지 시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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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우스트라사나는 내가 오랫동안 수련해 온 후굴 자세 중 하나다. 뒤로 손을 보내 발뒤꿈치를 잡는 동작 자체는 이제 낯설지 않다. 그런데 최근 수련하면서 같은 우스트라사나라도 발의 위치에 따라 자세를 유지하는 시간이 크게 달라진다는 것을 다시 느꼈다. 발가락을 세우고 뒤꿈치를 잡으면 약 3분까지 유지할 수 있다. 반면 발등을 바닥에 펴고 뒤꿈치를 잡으면 대체로 1분에서 1분 30초 정도가 지나면서 자세를 풀고 싶어진다. 두 자세를 비교해 보니 단순히 유지 시간만 다른 것이 아니었다. 발가락을 세웠을 때는 골반을 앞으로 유지하는 것이 비교적 쉽고, ‘가슴을 높이 들어야지’ 하고 의식하면 가슴도 조금 더 올라가면서 자세가 오히려 편해진다. 하지만 발등을 바닥에 편 자세에서는 골반을 앞으로 유지하기가 더 어렵다. 시간이 지나면서 가슴도 낮아지고 팔에 몸을 기대는 느낌이 커진다. 그래서 이번 우스트라사나 수련에서 내 질문은 분명해졌다. ‘발등을 바닥에 편 우스트라사나에서도 골반과 가슴의 위치를 잃지 않고 조금 더 안정적으로 머물려면 무엇을 연습해야 할까?’ 발가락을 세우면 3분, 발등을 펴면 1분 남짓 두 자세에서 가장 먼저 눈에 띄는 차이는 발의 위치다. 발가락을 세우면 뒤꿈치가 높아진다. 나는 이 상태에서 뒤꿈치를 잡으면 골반을 앞으로 유지하기가 비교적 쉽고, 가슴이 낮아지는 것 같을 때 다시 높이 들겠다고 의식하는 것도 가능하다. 그렇게 가슴을 다시 높이면 자세 유지도 조금 편해지고 약 3분까지 머물 수 있다. 반대로 발등을 바닥에 펴면 뒤꿈치의 위치가 낮아진다. 손은 여전히 뒤꿈치까지 닿지만 내 몸이 더 깊은 위치까지 가야 한다. 이 상태에서는 골반을 앞으로 보내고 유지하는 것이 어렵고, 시간이 지나면서 가슴을 높게 유지하는 것도 힘들어진다. Yoga Journal의 우스트라사나 가이드에서도 발뒤꿈치에 손이 닿기 어려운 경우 발가락을 세워 뒤꿈치를 높이는 변형을 제시한다. 발가락을 세우면 손이 닿아야 하는 위치가 높아져 뒤로 내려가야 하는 거리가 줄어든...

다누라사나 수련|자세 유지·허벅지 들기·후굴 깊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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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다누라사나는 엎드린 상태에서 무릎을 굽혀 양손으로 발을 잡고 가슴과 허벅지를 들어 올리는 후굴 자세다. 사진으로 보면 몸이 활처럼 휘어지는 모양이 먼저 눈에 들어오지만, 직접 수련하면서 내가 더 관심을 갖게 된 것은 얼마나 높이 올라가는가보다 그 높이를 어떻게 만들고 유지하는가였다. 나는 사진에서 보이는 정도의 기본 다누라사나는 할 수 있다. 그런데 처음 이 자세를 수련했을 때와 지금을 비교해보면 생각만큼 큰 변화는 없다. 발을 잡고 가슴과 다리를 들어 올리는 것까지는 가능하지만, 여기서 조금 더 높이 올라가려고 하면 분명하게 막히는 지점이 있다. 기본 자세는 되는데 더 높이 올라가기 어려운 이유 다누라사나를 수련하면서 다른 수련자들을 보면 가슴이 더 높이 올라가고 허벅지와 발도 바닥에서 훨씬 높게 들리는 경우가 있다. 나도 조금 더 올라가보려고 하지만 특히 허벅지가 바닥에서 잘 떨어지지 않는다. 손으로 발을 당겨봐도 발과 다리가 생각만큼 더 높이 올라오지 않는다. 처음에는 발을 잡은 손으로 조금 더 강하게 당기면 자세가 깊어질 것 같았다. 하지만 다누라사나를 설명하는 전문 수련 자료를 찾아보니 손으로 발을 끌어오는 것만이 중요한 것은 아니었다. 발과 발목을 손에 밀어내는 움직임이 앞몸을 들어 올리는 데 연결될 수 있다는 설명이 있었다. 이 부분이 지금 내 수련과 가장 맞닿아 있었다. 내가 어려워하는 것은 발을 잡는 것 자체가 아니라 그다음 단계이기 때문이다. 결국 ‘손으로 얼마나 세게 당기느냐’보다 가슴과 허벅지, 다리의 움직임이 어떻게 함께 연결되는지를 살펴볼 필요가 있다고 생각했다. 손으로 당기기보다 발을 뒤로 보내는 움직임 다음 수련에서 가장 먼저 확인해보고 싶은 것도 이 부분이다. 지금까지는 발을 잡으면 손으로 당겨서 다리를 더 높이 올리려는 데 신경을 많이 썼다. 그런데 앞으로는 손으로 당기는 힘만 키우기보다 발이 손을 뒤쪽으로 밀어내는 움직임을 먼저 관찰해보려고 한다. Yoga Journal의 다누라사나 수련 설명에서도 발을 손에 밀어내...

살라바사나 수련|기본 자세·후굴의 힘·다리 높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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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살라바사나를 처음 보면 동작이 그리 크지 않아 보인다. 엎드린 상태에서 가슴과 다리를 들어 올리는 자세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직접 해보면 스핑크스나 코브라와는 다른 방식으로 몸을 사용한다는 것을 알게 된다. 하타요가 후굴을 기록하면서 1탄 스핑크스, 2탄 코브라에 이어 이번에는 살라바사나를 선택했다. 앞의 두 자세가 팔의 지지를 이용하는 후굴이었다면, 이번에는 팔로 바닥을 밀지 않고 내 몸의 힘으로 가슴과 다리를 들어 올리는 과정을 살펴보고 싶었다. 살라바사나 기본 자세에서 내가 느낀 변화 현재 내가 연습하는 살라바사나는 엎드린 상태에서 두 팔을 몸 뒤쪽으로 뻗고 가슴과 두 다리를 함께 들어 올리는 형태다. 지금 이 기본 자세에서 두 다리를 들어 올리는 것 자체는 크게 어렵지 않다. 높이가 아주 높은 것은 아니지만 사진처럼 가슴과 다리를 들어 올려 잠시 유지할 수도 있다. 내가 요즘 관심을 두는 것은 자세를 얼마나 높이 만드는가보다 그 상태를 어떻게 유지하는가이다. 다리를 뒤로 길게 뻗으면서 가슴도 앞으로 길어진다는 느낌으로 자세를 만들어보면 단순히 허리를 꺾어서 상체를 들어 올리는 것과는 다르게 느껴진다. 기본 자세가 어느 정도 가능해지고 나니 오히려 그다음 단계가 궁금해졌다. 지금보다 다리를 더 높이 올리려고 하면 기본 자세에서는 느끼지 못했던 어려움이 나타나기 때문이다. 팔의 도움 없이 만드는 후굴과 몸 뒤쪽의 힘 살라바사나가 앞에서 연습한 스핑크스나 코브라와 다른 점은 팔의 지지를 거의 이용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스핑크스에서는 아래팔을 바닥에 두고, 코브라에서는 손을 바닥에 놓는다. 반면 내가 하는 살라바사나에서는 팔을 뒤로 뻗기 때문에 가슴과 다리를 스스로 들어 올려야 한다. 관련 연구에서도 살라바사나를 수행할 때 척추 주변을 포함한 몸통 근육들이 실제로 활성화되는 것이 관찰됐다. 전문적인 요가 자세 설명에서도 등과 엉덩이, 허벅지 뒤쪽을 사용하는 자세로 설명한다. 이 점은 내가 직접 자세를 하면서 느끼는 것과도 연결된다. 살라바사나는 ...

코브라 자세 오래 유지해도 어려웠던 이유|하타요가 후굴과 어깨·가슴 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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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후굴 수련을 하면서 예전과 지금의 느낌이 가장 많이 달라진 자세 중 하나가 코브라 자세다. 코브라 자세는 부장가사나(Bhujangasana)라고도 부른다. 엎드린 상태에서 손을 가슴 옆에 두고 상체를 들어 올리는 후굴 자세다. 처음 요가를 시작했을 때 나에게 코브라는 결코 편한 자세가 아니었다. 상체를 들어 올리면 허리에도 자극이 느껴졌고 자세를 유지하는 것 자체가 힘들었다. 그런데 하타요가를 계속 수련하면서 어느 순간 느낌이 달라졌다. 지금도 아주 높이 올라가거나 자세가 완벽한 것은 아니지만, 예전처럼 허리가 아프거나 눌리는 느낌은 거의 느끼지 않는다. 호흡도 비교적 편안하고 힘들이지 않고 꽤 오래 유지할 수 있는 자세가 됐다. 그런데 오래 유지할 수 있게 되니 오히려 예전에는 보이지 않았던 새로운 숙제가 보이기 시작했다. ■ 처음에는 허리가 힘들었지만 지금은 달라졌다 요가를 처음 시작했을 때는 코브라에서 상체를 들어 올리는 것 자체에 신경을 많이 썼다. 얼마나 올라가는지, 얼마나 오래 버틸 수 있는지가 먼저 느껴졌다. 그때는 허리에 자극도 있었다. 하지만 하타요가를 계속 수련한 지금은 코브라에서 예전과 같은 부담을 느끼지는 않는다. 자세가 완벽하지 않고 아주 깊은 후굴을 하는 것도 아니지만, 지금 내 몸이 허용하는 범위에서는 비교적 편안하게 머물 수 있다. 무엇보다 호흡을 하면서 자세를 오래 유지하는 것이 크게 힘들지 않다. 이 변화가 흥미로웠다. 예전에는 코브라를 ‘버티는 것’ 자체가 수련이었다면 지금은 오래 버티는 것보다 그 자세 안에서 내 몸을 어떻게 사용하고 있는지를 살펴보게 됐기 때문이다. 관련 연구를 찾아보니 요가 수련과 척추 가동성의 관계를 살펴본 2024년 체계적 문헌고찰에서 요가가 척추의 유연성과 가동성 향상에 도움이 될 가능성이 보고됐다. 다만 연구마다 대상과 수련 방법이 달랐기 때문에 모든 사람에게 같은 변화가 생긴다고 말할 수는 없다. 나 역시 ‘하타요가를 했기 때문에 허리의 불편함이 없어졌다’고 단정하려는 것은 아니다. 다만...

스핑크스 자세 하는 법|하타요가 후굴, 직접 해보니 쉽지 않았던 이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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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후굴 수련이라고 하면 허리를 깊게 젖히는 동작부터 떠올리기 쉽다. 나 역시 오랫동안 요가를 수련하면서 여러 후굴 동작을 경험했지만, 요즘은 얼마나 깊이 들어가는가보다 그 전에 몸이 어떤 과정을 거치는지를 더 자세히 들여다보게 된다. 그래서 이번에는 하타요가에서 후굴을 만들어가는 과정을 하나씩 기록해보려고 한다. 그 첫 번째 자세로 선택한 것이 스핑크스 자세다. 스핑크스 자세는 엎드린 상태에서 팔꿈치와 아래팔을 바닥에 대고 가슴을 들어 올리는 후굴이다. 산스크리트어로는 살람바 부장가사나(Salamba Bhujangasana)라고 부른다. 사진으로만 보면 상당히 편안하고 쉬워 보인다. 나도 가끔 수련하면서 처음에는 팔을 쭉 펴서 상체를 들어 올리는 후굴보다 훨씬 쉬운 자세라고 생각했다. 그런데 직접 해보면 이야기가 조금 달라진다. ■ 팔을 펴는 후굴보다 오히려 어렵게 느껴졌다 나에게 스핑크스 자세는 의외로 만만하지 않았다. 팔을 쭉 펴서 하는 후굴에서는 손으로 바닥을 밀면서 상체를 올릴 수 있는데, 스핑크스에서는 팔꿈치와 아래팔을 바닥에 둔 상태에서 어깨를 펴고 가슴을 바로 들어 올려야 한다. 바닥에 팔을 대고 있으니 편할 것 같지만 실제로 해보면 어깨가 움츠러들지 않도록 하면서 가슴 앞쪽을 길게 열어 올리는 과정이 생각보다 쉽지 않았다. 특히 수련할 때 팔꿈치를 바닥에 대고 자세를 잡아보면 처음부터 어깨와 가슴이 바로 펴지는 것은 아니다. 그래서 나는 한 번에 높이 올라가려고 하지 않는다. 아래팔로 바닥을 받치고 호흡하면서 조금씩 가슴을 세워본다. 몇 번의 호흡을 지나면서 천천히 몸이 펴질 때 처음 자세를 잡았을 때와 느낌이 달라진다. 그때 비로소 ‘아, 이제 후굴이 시작되는구나’ 하는 느낌이 든다. 나에게 스핑크스는 힘으로 높이를 만드는 자세라기보다 몸이 열릴 시간을 주면서 후굴의 방향을 찾아가는 자세에 더 가깝다. ■ 스핑크스에서 중요한 것은 허리를 얼마나 꺾느냐가 아니었다 후굴을 하면 흔히 허리가 얼마나 많이 휘어지는지를 먼저 보게 된다. 하지만...

요가할 때 몸이 뻣뻣한 이유는? 준비 운동 후 달라진 나의 수련 경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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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요가를 오래 해도 몸이 잘 풀리는 날과 유난히 뻣뻣한 날이 있다. 예전에 아쉬탕가 요가를 할 때는 그 차이를 시간대에서 많이 느꼈다. 아침에 수련하면 몸이 굳어 있는 것처럼 움직임이 답답했고, 저녁에는 같은 자세도 조금 더 편하게 들어갔던 기억이 있다. 지금은 하타요가를 오전에만 수련하고 있어서 아침과 저녁의 차이를 비교하지는 못한다. 대신 요즘에는 다른 차이를 느낀다. 같은 오전 수련이라도 수업을 시작하자마자 자세에 들어갈 때와 여러 준비 동작을 충분히 한 뒤 들어갈 때 몸의 움직임이 확실히 다르다는 것이다. ■ 우파비스타 코나사나는 준비하고 들어갈 때 달랐다 나에게 이 차이가 특히 잘 느껴지는 자세가 우파비스타 코나사나다. 나는 이 자세를 수련 초반에 바로 하면 상당히 힘들다. 다리를 벌린 상태에서 상체를 앞으로 가져가려고 해도 몸이 쉽게 따라오지 않고, 평소보다 뻣뻣하다는 느낌부터 든다. 그렇다고 그날 내 유연성이 갑자기 나빠졌다고 단정하기에는 조금 이상했다. 왜냐하면 여러 동작을 충분히 한 뒤 다시 우파비스타 코나사나에 들어가면 처음과 느낌이 달라지기 때문이다. 특히 다리를 벌린 상태에서 한쪽씩 몸을 움직이고, 파리브리타 자누 시르사사나처럼 옆으로 기울이며 가슴과 옆구리를 열어주는 동작을 한 뒤 다시 들어가면 훨씬 편하게 접근되는 것을 느꼈다. 내 경우에는 수련을 시작하고 약 20분 정도 지나면 ‘이제 몸이 좀 열렸구나’ 하는 느낌이 오는 편이다. 이 20분은 누구에게나 적용되는 기준은 아니다. 오랫동안 내 몸을 관찰하면서 내가 개인적으로 느끼게 된 시간이다. ■ 몸을 풀고 나면 왜 움직임이 편해질까? 내가 수련에서 느끼는 이런 변화가 왜 생기는지 궁금해서 운동 전 워밍업과 유연성에 관한 자료를 찾아봤다. 우리가 요가에서 흔히 ‘몸이 열렸다’고 표현하는 것은 하나의 변화만을 의미하지는 않았다. 가벼운 움직임으로 몸을 준비하면 체온과 근육으로 가는 혈류가 증가하고, 몸이 이후의 움직임에 대비하게 된다. 운동 전 스트레칭에 관한 의료 자료에서도 ...

할라사나를 더 깊게 하려면? 골반 위치를 다시 보게 된 나의 요가 수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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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요가를 오래 수련하다 보면 이미 익숙하다고 생각했던 자세에서도 새로운 숙제를 발견하게 된다. 요즘 나에게는 할라사나가 그렇다. 할라사나에서 두 발을 머리 뒤 바닥에 내려놓는 것까지는 어렵지 않다. 그런데 수련을 계속하면서 발이 닿는 것보다 다른 부분이 눈에 들어오기 시작했다. 바로 골반과 엉덩이의 위치다. 다른 수련자들의 할라사나를 보면 발이 바닥에 닿은 상태에서 골반과 엉덩이가 다리 쪽으로 좀 더 깊이 이동해 있다. 내 자세는 발은 잘 닿지만 골반이 그만큼 깊게 넘어가지 않는다. 몸을 충분히 풀고 수련한 날에는 평소보다 조금 더 이동하기도 한다. 그래도 아직 내가 원하는 만큼 자연스럽게 깊어지지는 않는다. ■ 발이 바닥에 닿는 것 만으로는 부족했다 예전에는 할라사나에서 발이 바닥에 잘 닿으면 자세가 어느 정도 나온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다음 동작으로 연결해보니 생각이 달라졌다. 할라사나에서 다리를 접어 무릎을 귀 옆으로 가져가는 카르나피다사나를 하거나, 손을 다리 쪽으로 가져가 감싸려고 할 때 그 차이가 느껴졌다. 손을 다리 쪽으로 가져가는 순간 자세가 안정적이지 않았다. 몸이 그 위치에 편안하게 머물지 못하고 다시 엉덩이 쪽으로 돌아오려는 느낌이 들었다. 그때부터 나는 발이 어디까지 내려가는지만 볼 것이 아니라 골반이 어느 위치에 있는지도 살펴봐야겠다고 생각했다. 할라사나의 모양을 만드는 것과 그 자세에서 안정적으로 다음 동작을 연결하는 것은 나에게 조금 다른 문제였다. ■ 할라사나 자세를 다시 찾아봤다 그래서 할라사나의 자세와 정렬에 대해 다시 찾아봤다. 자료를 살펴보면서 내가 눈여겨본 것은 단순히 발끝을 바닥에 대는 것만이 아니었다. 어깨와 팔의 지지를 유지하면서 골반의 위치와 척추가 길어지는 방향도 함께 살펴볼 필요가 있다는 점이었다. 내가 그동안 발이 바닥에 닿는지에만 너무 집중했던 것은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그렇다고 골반을 더 보내기 위해 억지로 몸을 밀어 넣고 싶지는 않다. 할라사나는 목과 어깨도 함께 사용되는 자세이기 때문에 ...

바카사나에서 발을 띄운 다음 보이기 시작한 것|복부를 말아 올리는 힘 연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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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바카사나를 처음 연습할 때는 두 발이 바닥에서 떨어지는 것 자체가 가장 큰 목표였습니다. 손으로 바닥을 짚고 몸을 앞으로 기울이면서 두 발이 뜨는 순간을 만들기까지 꽤 많은 연습이 필요했습니다. 지금은 예전보다 자연스럽게 두 발을 띄울 수 있습니다. 하지만 발이 뜬다고 해서 바카사나가 완성된 것은 아니라는 생각이 들기 시작했습니다. 오히려 한 가지가 가능해지고 나니 그전에는 보이지 않던 부분이 눈에 들어왔습니다. 최근 제가 가장 관심을 갖게 된 것은 바카사나에서 복부를 어떻게 사용하는가 하는 부분입니다. ■ 발은 뜨지만 균형으로 버티고 있었습니다 현재 제가 바카사나를 할 때 가장 먼저 찾는 것은 균형점입니다. 두 손으로 바닥을 짚고 몸을 앞으로 조금씩 이동하다가 적당한 지점을 찾으면 두 발이 바닥에서 떨어집니다. 그 상태에서 잠시 자세를 유지할 수도 있습니다. 그런데 제 몸의 느낌을 자세히 살펴보면 강한 힘으로 몸 전체를 위로 끌어올린다기보다 균형이 맞는 지점에서 살짝 버티고 있다는 표현이 더 정확합니다. 균형이 유지되면 발을 들고 있을 수 있지만 그 균형이 풀리기 시작하면 몸이 앞으로 넘어지기보다는 들고 있던 발이 다시 뒤쪽 바닥으로 내려옵니다. 예전에는 두 발이 뜨는지만 확인했습니다. 이제는 발이 뜬 상태에서 제가 어떤 힘을 사용하고 있는지도 조금씩 궁금해지기 시작했습니다. ■ 다른 수련자에게 하신 선생님의 말이 귀에 남았습니다 수업 중 선생님께서 다른 수련자의 바카사나를 지도하시는 것을 들었습니다. 그때 복부를 말아 올리는 것에 대해 말씀하셨습니다. 저에게 직접 하신 말씀은 아니었습니다. 그런데 그 설명이 귀에 들어왔습니다. 그 말을 듣고 생각해보니 저는 바카사나에서 복부를 말아 올린다는 것을 거의 의식하지 않고 있었습니다. 지금까지는 앞으로 무게를 이동해서 균형점을 찾고 발을 띄우는 것에 집중했습니다. 발이 뜨면 자세가 되었다고 생각했기 때문에 그 안에서 복부를 어떻게 사용하고 있는지까지 생각할 여유가 없었던 것 같습니다. 다른 사람의 자세를...

우르드바 다누라사나 팔이 펴지지 않는 이유를 찾아가는 중|다음 단계에서 만난 정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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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우르드바 다누라사나를 처음 연습할 때는 몸을 들어 올리는 것 자체가 쉽지 않았습니다. 그 과정은 이전 글에서도 기록했습니다. 지금은 예전보다 가슴을 열 수 있고 자세 안에서 호흡도 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그런데 여기까지 오고 나니 이전에는 잘 보이지 않았던 다음 과제가 생겼습니다. 바로 팔을 곧게 펴는 것입니다. 저는 우르드바 다누라사나에 올라가 있을 때 나름대로 팔을 끝까지 펴고 있다고 생각했습니다. 자세 안에서 느끼기에는 더 이상 펼 곳이 없을 만큼 힘을 주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사진 속 제 모습은 제가 느끼는 것과 달랐습니다. 팔꿈치가 생각보다 많이 굽어 있었습니다. ‘나는 분명히 다 폈다고 느끼는데, 여기서 팔이 더 펴질 수 있을까?’ 요즘 제가 우르드바 다누라사나를 연습하면서 새롭게 갖게 된 질문입니다. ■ 내가 느끼는 자세와 사진 속 자세는 달랐습니다 우르드바 다누라사나에 올라가면 손과 발로 몸을 지탱하면서 자세를 유지해야 합니다. 그 안에서 저는 팔도 열심히 펴고 있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런데 수련 사진을 자세히 보고 나니 팔꿈치에는 분명한 굽힘이 남아 있었습니다. 이것이 제게는 꽤 새로운 발견이었습니다. 몸으로 느끼는 자세와 실제로 만들어지고 있는 자세 사이에 차이가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기 때문입니다. 예전에는 일단 몸을 들어 올리는 데 집중했기 때문에 팔꿈치가 어느 정도 펴져 있는지까지 자세히 볼 여유가 없었습니다. 이제 자세에 올라가는 것이 조금 익숙해지면서 그다음 부분이 눈에 들어오기 시작했습니다. 그래서 요즘에는 단순히 우르드바 다누라사나를 했다는 것보다 자세 안에서 팔이 어떻게 놓여 있는지를 더 의식하게 됩니다. 사진은 제가 현재 어느 단계에 있는지를 확인하는 데도 도움이 되었습니다. ■ 벽 연습에서 부족한 부분을 더 분명하게 알았습니다 팔의 움직임을 더 확실하게 느끼게 된 것은 벽을 이용한 연습을 하면서였습니다. 선생님은 팔을 쭉 펴고 발을 더 안쪽으로 걸어 들어온 다음 가슴을 벽 쪽으로 보내보라고 하셨습니다. 직접 해보니...

아쉬와 산찰라나아사나가 어려운 이유|골반과 중심을 잡으며 연습한 과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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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하타요가 수업에서 아쉬와 산찰라나아사나를 할 때면 저는 한 자세 안에서도 여러 가지를 동시에 신경 쓰게 됩니다. 아쉬와 산찰라나아사나는 흔히 승마 자세라고도 부릅니다. 한쪽 다리는 앞으로 굽히고 반대쪽 다리는 뒤로 길게 보내는 형태에서 시작합니다. 기본적인 자세에서는 골반을 낮추고 상체를 세우지만, 제가 수업에서 연습하는 동작은 여기에서 조금 더 이어집니다. 먼저 자세의 중심을 안정적으로 잡고 팔과 상체를 위로 뻗은 다음, 가슴을 열면서 상체와 머리를 뒤쪽으로 보내는 동작입니다. 골반을 충분히 낮추는 것부터 어렵고, 중심을 잡은 상태에서 상체를 뒤로 보내는 것도 생각만큼 잘되지 않습니다. 더구나 같은 자세를 해도 어떤 날은 어느 정도 움직임이 나오는데 어떤 날은 몸이 잘 따라주지 않습니다. 그래서 요즘은 완성된 자세의 모양만 따라가기보다 그 자세에 들어가는 과정을 하나씩 느껴보며 연습하고 있습니다. ■ 골반을 낮추는 첫 과정부터 쉽지 않았습니다 제가 아쉬와 산찰라나아사나에서 가장 먼저 어려움을 느끼는 부분은 뒤로 뻗은 다리 쪽입니다. 앞쪽 무릎을 굽히고 반대쪽 다리를 뒤로 길게 보낸 다음 골반을 아래쪽으로 낮추려고 하면 뒤쪽 허벅지가 제가 원하는 만큼 바닥 방향으로 내려가지 않습니다. 조금 더 낮추려고 해도 어느 지점부터는 움직임이 쉽게 이어지지 않습니다. 처음에는 자세를 보고 단순하게 생각했습니다. 다리를 앞뒤로 벌리고 골반을 낮추면 될 것 같았습니다. 하지만 직접 수련해보니 다리를 앞뒤로 길게 보내는 것과 그 상태에서 골반을 편안하게 낮추는 것은 제게 전혀 간단한 일이 아니었습니다. 특히 다음 동작으로 이어가려면 골반을 무조건 아래로 누르는 것만 생각할 수도 없었습니다. 골반을 낮춘 상태에서 몸이 안정되어 있어야 그다음 상체의 움직임으로 이어갈 수 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요즘은 얼마나 깊게 내려갔는지만 확인하기보다 그 위치에서 제 몸이 안정되어 있는지를 함께 느껴보려고 합니다. ■ 중심을 잡은 뒤 가슴과 머리를 뒤로 보내는 것이 더 어려웠습니다...

하타요가 혼자 연습이 필요했던 이유|낯선 동작을 몸으로 익혀간 과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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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저는 일주일에 세 번 하타요가 수업을 받고 있습니다. 정해진 시간에 선생님의 설명을 들으며 여러 자세를 연습하는 것이 제 요가 수련의 중심입니다. 그런데 수업을 받다 보면 가끔 수업이 끝난 뒤에도 다시 해보고 싶은 자세가 생깁니다. 모든 자세가 그런 것은 아닙니다. 어떤 동작을 하다가 ‘이 부분만 조금 더 연습하면 내 몸이 움직임을 이해할 것 같다’는 느낌이 들 때가 있습니다. 그럴 때 저는 혼자 연습을 해봅니다. 특히 저에게 어렵게 느껴졌던 시르사 파다사나를 연습하면서 혼자 하는 연습의 의미를 분명하게 느꼈습니다. 처음에는 선생님이 잡아주고 있어도 몸이 뒤로 넘어가는 움직임 자체가 낯설었습니다. 하지만 수업에서 배웠던 동작 가운데 제가 어려워했던 부분을 혼자 다시 연습하면서 조금씩 움직임을 몸으로 익힐 수 있었습니다. ■ ‘조금만 더 해보면 알 것 같다’는 순간이 있었습니다 시르사 파다사나를 처음 연습했을 때 가장 크게 느껴졌던 것은 몸의 저항감이었습니다. 제 몸이 생각보다 훨씬 많이 뒤로 휘어지는 것처럼 느껴졌습니다. 허리와 가슴, 골반이 모두 뒤쪽으로 향하는 느낌이 강했습니다. 선생님이 옆에서 몸을 잡아주고 있었지만 마음속에서는 계속 한 가지 생각이 들었습니다. ‘과연 내가 이걸 할 수 있을까?’ 아직 제 몸이 그 움직임을 충분히 경험하지 못했기 때문에 어디까지 움직여야 하는지도 알 수 없었습니다. 그 낯선 느낌 때문에 몸에서도 쉽게 움직임을 받아들이지 못했습니다. 그런데 몇 번 시도하다 보니 아주 조금씩 느낌이 달라졌습니다. 완전히 할 수 있다는 자신감은 아니었지만 ‘조금만 더 연습해보면 이 움직임이 어떤 것인지 알 수 있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저는 바로 이런 순간에 혼자 연습하고 싶은 마음이 생깁니다. 수업에서는 여러 자세를 이어서 연습하기 때문에 제가 어려워하는 한 부분만 계속 해볼 수는 없습니다. 혼자 연습할 때는 그날 잘되지 않았던 부분에 조금 더 시간을 두고 다시 움직여볼 수 있었습니다. ■ 어려웠던 한 구간을 여러 번 ...

시르사사나에서 어깨와 귀를 떨어뜨리기 어려운 이유|팔로 미는 힘을 연습하며 알게 된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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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시르사사나를 처음 연습할 때 저에게 가장 중요한 것은 어떻게든 거꾸로 서는 것이었습니다. 두 발을 바닥에서 떼고 몸을 들어 올리는 것 자체가 어려웠기 때문에 어깨가 어디에 있는지, 팔로 바닥을 제대로 밀고 있는지까지 생각할 여유가 없었습니다. 선생님은 그때부터 어깨에 대해 계속 지적해주셨습니다. 하지만 저는 그 말을 몰라서 고치지 못했다기보다, 자세를 유지하는 것만으로도 급급해서 몸으로 적용하지 못했던 것 같습니다. 시간이 지나면서 이제 시르사사나로 올라가는 것 자체는 예전보다 익숙해졌습니다. 그러자 이전에는 보이지 않았던 문제가 하나씩 느껴지기 시작했습니다. 그중 하나가 어깨였습니다. 요즘 제가 시르사사나에서 가장 신경 쓰는 것은 어깨가 귀 쪽으로 가까워지지 않도록 의식하면서 팔로 바닥을 계속 밀어내는 것입니다. 잠깐은 제대로 된 느낌을 찾을 수 있지만, 그 상태를 오래 유지하는 것은 아직 어렵습니다. 시르사사나에서 서는 것과 그 안에서 바른 힘을 계속 사용하는 것은 저에게 전혀 다른 연습이었습니다. ■ 처음에는 어깨보다 서는 것 자체가 더 급했습니다 처음 시르사사나를 연습할 때는 지금보다 자세에 대한 감각이 훨씬 부족했습니다. 혼자 몸을 들어 올리려고 하면 어깨를 바르게 정렬한 상태에서 힘을 사용하는 것보다 일단 올라가야 한다는 생각이 앞섰습니다. 그러다 보니 어깨에도 힘을 많이 주면서 몸 전체를 끌어올리듯 사용했던 것 같습니다. 선생님은 그때도 어깨에 대해 계속 말씀해주셨습니다. 하지만 당시에는 두 다리를 들어 올리고 중심을 잡는 것만으로도 정신이 없었습니다. 어깨와 귀 사이가 가까워졌는지, 팔로 바닥을 제대로 밀고 있는지 확인할 여유가 없었습니다. 선생님의 설명을 듣기는 했지만 그것을 제 몸에서 바로 고쳐낼 만큼 자세에 대한 감각이 생기지 않았던 것입니다. 그때는 시르사사나에 올라가는 데 성공하면 그다음은 자연스럽게 좋아질 거라고 생각했습니다. 하지만 올라가는 것이 조금 익숙해지고 나니 오히려 그동안 제가 어떻게 힘을 쓰고 있었는지가 보이기 ...

하스타 시르사사나, 올라간 뒤 균형 유지가 더 어려웠던 이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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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하스타 시르사사나를 처음 봤을 때는 ‘이건 정말 어려운 자세겠다’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두 손과 머리를 바닥에 두고 거꾸로 서 있는 모습이 고난도 자세처럼 보였습니다. 저는 하스타 시르사사나를 시작하기 전에 시르사사나를 먼저 충분히 연습했습니다. 그래서 거꾸로 서는 것 자체에는 어느 정도 익숙해진 상태였습니다. 막상 처음 하스타 시르사사나를 해보니 예상과는 조금 달랐습니다. 오래 유지하지는 못했지만 자세에 들어가 두 다리를 위로 세우는 것까지는 생각보다 어렵지 않았습니다. 제가 어려움을 느낀 것은 그다음부터였습니다. ■ 시르사사나보다 균형이 훨씬 예민하게 느껴졌습니다 하스타 시르사사나에 들어간 뒤에는 작은 힘의 차이에도 균형이 쉽게 흔들렸습니다. 특히 양팔에 들어가는 힘이 조금만 달라져도 몸의 중심이 한쪽으로 기울어지는 것처럼 느껴졌습니다. 한쪽 팔에 힘이 더 실렸다고 느끼는 순간 중심을 잃는 경우도 있었습니다. 시르사사나와는 넘어지는 방향도 달랐습니다. 제 경우 시르사사나에서는 균형을 잃으면 주로 뒤쪽으로 넘어졌습니다. 그런데 하스타 시르사사나에서는 중심이 무너지면 옆으로 넘어지는 경우가 많았습니다. 두 자세 모두 거꾸로 서는 자세이지만 직접 수련하면서 균형이 무너질 때 몸에서 느껴지는 움직임이 다르다는 것을 알게 됐습니다. 넘어지는 것 자체가 무섭지는 않았습니다. 시르사사나를 먼저 충분히 연습하면서 거꾸로 서 있는 상태와 넘어지는 상황에 이미 어느 정도 익숙해져 있었기 때문입니다. ■ 팔이 벌어지지 않게 하고 손으로 바닥을 미는 것이 어려웠습니다 수업 중 선생님은 하스타 시르사사나를 할 때 손으로 바닥을 밀라고 하셨습니다. 처음에는 그 말이 잘 이해되지 않았습니다. 손으로 바닥을 밀려고 해도 생각처럼 힘이 잘 실리지 않았습니다. 수련하면서 제가 특히 어려웠던 것은 팔이 양옆으로 벌어지지 않게 유지하면서 손으로 바닥을 미는 것이었습니다. 바닥을 밀려고 힘을 쓰다 보면 팔의 위치를 유지하기가 어려웠고, 팔이 벌어지지 않도록 신경 쓰면 손으로 바닥을...

하타요가 카포타사나 준비 동작, 몇 달에 걸쳐 달라진 수련 과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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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카포타사나를 향한 연습, 몇 달의 시간이 지나자 몸이 달라졌습니다 하타요가를 수련하다 보면 처음부터 비교적 편하게 들어가는 자세가 있는 반면, 아무리 힘을 써도 몸이 움직이지 않는 동작도 만납니다. 저에게는 카포타사나로 가기 위한 연습 과정 중 하나가 그랬습니다. 숩타 비라아사나로 뒤로 눕는 것 자체는 크게 어렵지 않았습니다. 처음에는 허벅지 앞쪽이 조금 당기고 힘들었지만 수련을 이어가면서 그 불편함도 전보다 줄었습니다. 어려움은 그다음부터였습니다. 머리 옆으로 손을 짚고 바닥을 밀어 팔을 펴면서 머리와 몸을 들어 올려야 했는데, 힘을 아무리 써도 머리가 바닥에서 떨어지지 않았습니다. 이 동작을 매일 따로 연습한 것은 아닙니다. 평소 하타요가 수련을 이어가다가 수업에서 이 동작을 만날 때마다 시도했습니다. 그렇게 시간이 흘렀는데 어느 날 이전과 같은 방법으로 손을 짚고 밀었을 때 처음으로 머리가 바닥에서 들렸습니다. 그 뒤 더 깊은 위치에서도 비슷한 변화가 몇 달의 간격을 두고 나타났습니다. ■ 힘을 쓰고 있는데도 머리는 바닥에서 움직이지 않았습니다 처음에는 무엇이 부족한지 알 수 없었습니다. 팔을 머리 뒤쪽으로 가져가는 것은 가능했고 손바닥도 바닥에 짚을 수 있었습니다. 문제는 그다음이었습니다. 손으로 바닥을 밀면서 팔꿈치를 펴고 몸을 들어 올리려고 하면 힘은 쓰고 있는데 머리는 그대로 바닥에 있었습니다. 이때 제가 느꼈던 어려움은 단순히 몸이 뻣뻣해서 자세의 모양을 만들지 못하는 것과는 조금 달랐습니다. 손도 제자리에 있고 팔도 움직일 수 있는데, 제가 쓰고 있는 힘이 몸을 들어 올리는 움직임으로 연결되지 않는 느낌이었습니다. 당시에는 팔의 힘이 부족한 것인지, 가슴이 충분히 열리지 않은 것인지 정확한 이유를 알지 못했습니다. 몇 번을 시도해도 같은 지점에서 멈추다 보니 어느 순간에는 ‘이 동작은 나한테 안 되는 동작인가 보다’라고 생각하기도 했습니다. 숩타 비라아사나로 누울 수 있다는 것과 그 상태에서 다시 몸을 들어 올릴 수 있다는 것은 제 ...

우스트라사나가 어려웠던 이유, 가슴을 들고 호흡을 채우며 달라졌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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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우스트라사나는 비교적 쉽게 들어가는 사람도 있지만 저에게는 유난히 어려운 자세였습니다. 발뒤꿈치를 잡는 것까지는 가능했습니다. 그렇다고 발뒤꿈치를 잡는 것이 우스트라사나의 완성이라고 생각했던 것은 아닙니다. 오히려 그 상태에서 어떻게 몸을 써야 하는지가 더 어려웠습니다. 선생님의 설명을 계속 듣고 있었지만 막상 자세에 들어가면 그 말씀을 제 몸에서 어떻게 만들어야 하는지 잘 알 수 없었습니다. 자세를 유지하는 동안에는 팔과 손에 힘이 많이 들어갔습니다. 가슴과 허리, 목도 모두 힘들었고 숨을 쉬는 것도 편하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이 글에서는 우스트라사나가 잘되는 사람의 방법을 설명하기보다, 이 자세가 유난히 어려웠던 제가 연습하면서 어떤 감각을 하나씩 알아가게 됐는지를 기록해보려고 합니다. ■ 허벅지를 앞으로 보내라는 말이 생각처럼 되지 않았습니다 처음 선생님에게 많이 들었던 말 중 하나가 “허벅지를 앞으로 보내세요”였습니다. 말은 어렵지 않았습니다. 저도 그렇게 해보려고 했습니다. 그런데 몸은 생각처럼 움직이지 않았습니다. 허벅지를 앞으로 보내려고 해도 잘되지 않았고, 자세에 들어가면 자연스럽게 손과 팔에 의지해서 버티게 됐습니다. 특히 손과 팔이 많이 힘들었습니다. 발뒤꿈치를 잡은 상태에서 팔에 힘이 많이 들어가다 보니 자세를 유지하는 것 자체가 힘들었습니다. 가슴도 답답했고 허리와 목도 편하지 않았습니다. 몸 전체가 힘든 상태에서는 호흡도 자연스럽게 이어지지 않았습니다. 선생님의 설명을 듣고 머리로는 이해하고 있었지만 그것을 실제로 몸에서 만들어내는 것은 또 다른 문제였습니다. ■ “가슴을 높이 드세요. 가슴에 숨을 채우세요” 선생님은 우스트라사나를 할 때 또 한 가지를 계속 말씀하셨습니다. “가슴을 높이 드세요. 가슴에 숨을 채우세요.” 처음에는 이 말도 정확히 어떤 느낌인지 알기 어려웠습니다. 가슴을 높이라는 말을 듣고 그렇게 해보려고 했지만, 실제 자세 안에서 가슴을 어떻게 들어야 하는지 쉽게 느껴지지 않았습니다. 가슴에 숨을 채우라는 말도...

세투 반다사나 3분 유지가 가능해진 이유|한곳에 힘을 몰아쓰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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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세투 반다사나를 할 때 나에게 가장 어려웠던 것은 자세를 만드는 것보다 그 자세를 오래 유지하는 일이었다. 예전에는 1분 정도만 지나도 상당히 힘들었다. 그래서 수업에서 3분을 유지할 때면 자세를 제대로 하는 것보다 '어떻게 이 시간을 버티지?'라는 생각이 먼저 들곤 했다. 그런데 며칠 전 하타요가 수업에서는 처음으로 느낌이 달랐다. 세투 반다사나를 3분 동안 유지했는데도 예전처럼 힘겹게 버텼다는 느낌이 들지 않았다. 자세를 마친 뒤 피로도 훨씬 적었다. 갑자기 힘이 세진 것도 아니고 자세가 특별히 쉬워진 것도 아니었다. 달라진 것은 내가 힘을 사용하는 방법과 수업을 따라가는 방식이었다. ■ 예전에는 한 가지 힘으로 자세를 버티려고 했다 그동안 세투 반다사나를 할 때는 허리를 들어 올리는 것이 가장 중요하다고 생각했던 것 같다. 자세가 힘들어지면 허리를 더 들어야 한다고 생각했고, 자연스럽게 그곳에 힘을 집중했다. 그렇게 하면 처음에는 자세가 유지되는 것 같지만 시간이 조금만 지나도 힘들어졌다. 어떤 날에는 발로 바닥을 밀어야 한다는 설명을 듣고 발에만 신경을 쓴 적도 있다. 허리를 드는 데 집중하던 것에서 발로 미는 것으로 대상만 바뀌었을 뿐, 한 가지 힘에 의존한다는 점은 비슷했다. 당시에는 힘이 부족해서 오래 유지하지 못한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더 힘을 내서 버텨야 한다고 생각했는데, 이번 수업을 통해 다른 가능성을 발견했다. ■ 선생님의 설명을 놓치지 않고 그대로 따라가 보았다 이번 수업에서 평소와 가장 달랐던 것은 선생님의 설명을 듣는 내 태도였다. 돌이켜보면 이전에는 자세를 하고 있으면서도 다른 생각을 하느라 설명을 충분히 따라가지 못한 날도 있었다. 이번에는 선생님이 하는 말을 한마디씩 놓치지 않으려고 했다. 발을 어떻게 사용하라고 하면 그대로 해보고, 가슴을 들어 올리라고 하면 그 느낌에 집중했다. 호흡에 대한 설명이 나오면 자세를 유지하는 데만 정신을 쏟지 않고 호흡도 계속 이어가려고 했다. 하나를 하고 다른 하나를 잊는 것이...

요가 호흡이 어려운 이유|우짜이 호흡부터 하타 호흡까지 직접 느낀 변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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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요가에서 호흡이 중요하다는 말은 처음부터 많이 들었다. 나 역시 요가를 처음 시작했을 때부터 호흡을 배웠다. 그런데 오랫동안 요가를 했다고 해서 호흡이 저절로 자연스러워진 것은 아니었다. 지금도 어려운 자세를 하다 보면 자세에 정신이 쏠려 호흡을 놓칠 때가 있다. 그러다 문득 ‘아, 호흡해야지.’ 하고 다시 숨을 의식한다. 그 순간 자세가 갑자기 쉬워지는 것은 아니다. 그런데 조금 전보다 힘듦이 덜해지는 느낌이 있다. 요가를 오래 하면서도 내가 아직 계속 배우고 있는 것, 그중 하나가 바로 호흡이다. ■ 아쉬탕가에서 처음 배운 우짜이 호흡 나는 처음 아쉬탕가 요가를 배우면서 우짜이 호흡도 함께 배웠다. 동작만 따라가는 것이 아니라 호흡을 이어가면서 수련해야 했다. 하지만 나에게 우짜이 호흡은 처음부터 쉽지 않았다. 당시에는 갈비뼈와 흉곽의 움직임을 의식하며 호흡하도록 배웠는데, 나는 호흡할 때 배가 움직이는 습관이 있어 선생님에게 지적을 받은 적도 있다. 호흡 하나만 신경 쓰는 것도 어려운데 자세까지 함께 해야 하니 더욱 쉽지 않았다. 동작을 따라가다 보면 어느 순간 호흡보다 자세에 더 많은 신경을 쓰고 있었다. 오랜 시간 아쉬탕가를 했지만 우짜이 호흡이 완전히 내 것이 되었다고 말하기는 어렵다. 지금 생각해보면 그때부터 나는 자세만큼이나 호흡도 어려워했던 것 같다. ■ 하타 요가에서 만난 조용한 호흡 지금은 하타 요가를 수련하고 있다. 내가 다니는 하타 수업에서는 예전에 아쉬탕가에서 했던 우짜이 호흡과는 다르게 좀 더 조용하게 호흡한다. 나에게는 이 호흡이 우짜이보다 편하게 느껴진다. 그렇다고 아무 생각 없이 자연스럽게 호흡이 이어지는 단계는 아니다. 편한 자세에서는 괜찮지만 어려운 자세에 들어가면 상황이 달라진다. 몸의 위치를 잡고, 힘을 써야 할 곳을 생각하고, 자세를 유지하려고 애쓰다 보면 호흡이 뒤로 밀려날 때가 있다. 아직은 자세와 호흡을 동시에 자연스럽게 이어가는 것이 나에게 하나의 연습이다. ■ 힘든 자세일수록 호흡을 먼저 잊는다 특히...

다누라사나가 어려운 이유|활 자세에서 허벅지가 안 뜨는 이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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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요가를 하다 보면 유난히 어려운 자세가 하나씩 있다. 나에게는 다누라사나(Dhanurasana)가 그렇다. 다누라사나는 우리말로 ‘활 자세’라고 부른다. 엎드린 상태에서 무릎을 굽혀 양손으로 발목을 잡고, 가슴과 허벅지를 바닥에서 들어 올리는 자세다. 옆에서 보면 몸이 활처럼 휘어진 모양이 된다. 보기에는 동작이 복잡해 보이지 않는다. 발목도 잡힌다. 그런데 막상 해보면 이야기가 달라진다. 특히 나는 허벅지를 바닥에서 들어 올리는 것이 정말 어렵다. ■ 발목을 잡는 것과 몸을 들어 올리는 것은 달랐다 다누라사나를 할 때 양손으로 발목을 잡는 것까지는 가능하다. 문제는 그다음이다. 발목을 잡았다고 자세가 완성되는 것이 아니다. 다리를 뒤쪽과 위쪽으로 보내면서 발로 손을 밀어내는 움직임이 이어져야 가슴과 허벅지가 바닥에서 들리기 시작한다. 수업에서도 선생님은 종종 말한다. “발로 손을 밀어내세요.” “다리를 뒤로 차세요.” 무슨 뜻인지는 안다. 그런데 머리로 이해하는 것과 몸으로 그 힘을 만들어내는 것은 전혀 다른 문제였다. 나는 발목을 잡고 있는 것까지는 되는데 다리를 뒤로 힘 있게 보내는 동작이 잘되지 않는다. 그러다 보니 허벅지도 생각만큼 바닥에서 올라오지 않는다. ■ 다누라사나는 골반 유연성만의 문제일까? 처음에는 나도 다누라사나가 어려운 이유를 단순하게 생각했다. ‘내 골반이 잘 안 열려서 그런가?’ 하지만 다누라사나는 한 부분만 움직이는 자세가 아니다. 허벅지 앞쪽과 고관절 앞쪽이 움직일 수 있어야 하고, 어깨와 가슴의 움직임도 함께 필요하다. 여기에 다리를 뒤로 보내는 힘과 몸통을 안정적으로 사용하는 힘도 필요하다. 그래서 다누라사나가 어렵다고 해서 단순히 ‘골반이 굳어서 그렇다’고 말하기는 어려운 것 같다. 사람마다 막히는 지점도 다를 수 있다. 내가 직접 해보면서 가장 크게 느끼는 어려움은 허벅지가 잘 들리지 않는다는 것이다. 그리고 그 허벅지를 들어 올리기 위해 필요한 다리의 움직임을 내 힘으로 만들어내는 것이 쉽지 않다. ■ 선생님이...

혼자 하는 요가와 요가원 수업은 왜 다를까? 오래 수련하며 느낀 차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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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요가를 오래 하다 보니 이제는 집에서도 혼자 매트를 펴고 어느 정도 수련할 수 있게 됐다. 수업에서 배운 자세를 다시 해보기도 하고, 잘 안 되는 동작을 혼자 연습하기도 한다. 그렇다면 집에서 혼자 요가를 할 수 있게 되면 굳이 요가원 수업을 계속 받아야 할까? 내 경험으로는 전혀 그렇지 않다. 오히려 수련을 오래 할수록 혼자 하는 요가와 선생님에게 직접 배우는 수업은 역할이 다르다는 것을 더 많이 느낀다. 집에서 하는 요가는 나에게 복습에 가깝다. 반면 요가원 수업에서는 내가 스스로 발견하지 못했던 몸의 습관을 알게 되고, 혼자라면 피했을 동작도 조금 더 해보게 된다. 최근 수업에서도 그 차이를 다시 한번 느꼈다. ■ 혼자 연습하면 ‘됐는지 안 됐는지’를 먼저 보게 된다 혼자 어려운 자세를 연습할 때 내가 가장 먼저 확인하는 것은 단순하다. ‘됐나?’ ‘안 됐나?’ 목표했던 움직임이 나오면 일단 성공했다고 생각하기 쉽다. 잘 안 되면 다시 해본다. 그런데 혼자 반복하다 보면 내가 계속 같은 방법으로 움직이고 있다는 사실을 알아차리지 못할 때가 있다. 내 몸 안에서 느끼는 것과 밖에서 전체 움직임을 바라보는 것은 다르기 때문이다. 요가 수업을 받으면서 알게 된 것은 선생님은 단순히 자세가 완성됐는지만 보는 것이 아니라는 점이다. 어떤 과정으로 그 자세에 들어가는지, 현재 몸에서 무엇을 조금 바꾸면 되는지를 함께 본다. 이 차이가 생각보다 컸다. ■ “무릎을 조금 더 접어보세요” 최근 차크라사나를 연습할 때였다. 나는 그 자세를 여러 번 연습해 왔지만 생각처럼 움직임이 잘 나오지 않을 때가 있었다. 수업에서 다시 시도하고 있는데 선생님이 내 자세를 보더니 말했다. “무릎을 조금 더 접어보세요.” 처음에는 속으로 생각했다. ‘무릎을 조금 더 접는다고 될까?’ 아주 작은 차이처럼 느껴졌기 때문이다. 그런데 선생님이 알려준 대로 해봤더니 그동안 잘 나오지 않던 움직임이 나왔다. 나도 순간 놀랐다. 무조건 더 세게 하거나 더 많이 반복해야 하는 문제가 아니었...

요가는 왜 자꾸 하고 싶을까? 오래 수련할수록 좋아지는 이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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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요가 수업이 있는 날이면 나는 가끔 이런 생각을 한다. ‘오늘은 또 뭘 할까?’ 힘든 동작을 할 수도 있고 잘 안 되는 자세를 만날 수도 있는데, 이상하게 수업에 가기 싫다는 마음보다 빨리 가고 싶다는 마음이 더 크다. 반대로 사정이 생겨 수업을 못 가는 날에는 꽤 아쉽다. 왜 나는 이렇게 요가를 좋아하게 됐을까? 건강을 위해서라고 하기에는 그것만으로는 설명이 부족하다. 유연해지고 싶어서 시작했더라도 오랫동안 계속하게 만드는 이유는 또 다른 곳에 있는 것 같다. 생각해보면 답은 의외로 단순하다. 나는 그냥 요가 자체가 재미있다. ■ 운동인데 기다려지는 시간이 되었다 운동은 건강을 위해 해야 한다고 생각하면 때로 숙제처럼 느껴질 수 있다. 하지만 좋아하는 운동은 조금 다르다. 수업이 기다려지고 오늘은 어떤 동작을 배우게 될지 궁금해진다. 요가는 매번 똑같은 경험을 주지 않는다. 같은 자세를 해도 어느 날은 몸이 무겁고, 어느 날은 생각보다 움직임이 편하다. 지난번에는 전혀 되지 않았던 동작이 어느 날 갑자기 조금 되는 순간도 있다. 그래서 수련할 때마다 내 몸을 새롭게 관찰하게 된다. 나에게는 이 과정 자체가 재미다. ■ 안 되던 자세가 되는 순간의 짜릿함 요가를 계속하게 만드는 재미 중 하나는 분명 성취감이다. 요가에는 처음 봤을 때 ‘저걸 내가 어떻게 하지?’ 싶은 자세가 많다. 한두 번 연습한다고 바로 되는 것도 아니다. 여러 번 시도해도 제자리인 것처럼 느껴질 때도 있고, 꽤 오랫동안 변화가 없는 자세도 있다. 그런데 어느 날 몸이 조금 달라진다. 어제까지 안 되던 동작이 갑자기 되고, 아주 조금이지만 전보다 편안하게 움직이는 순간이 온다. 그때 느끼는 짜릿함이 있다. 누군가와 경쟁해서 이긴 기쁨과는 조금 다르다. 예전의 내가 못했던 것을 지금의 내가 해냈다는 기쁨에 가깝다. 그 경험을 한번 하고 나면 또 다른 자세에서도 ‘이것도 언젠가는 되지 않을까?’ 하는 마음이 생긴다. ■ 수업이 끝난 뒤 찾아오는 개운함 요가를 좋아하는 또 하나의 이유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