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타요가 후굴은 어떻게 깊어졌을까?|스핑크스·우르드바 다누라사나·카포타사나
처음 후굴을 연습할 때는 자세가 얼마나 깊어지는지가 가장 눈에 들어왔다.
스핑크스와 코브라처럼 바닥에서 시작하는 후굴을 거쳐 우스트라사나, 우르드바 다누라사나를 연습했고, 지금은 카포타사나를 만들어가는 과정에 있다.
처음에는 몸을 얼마나 뒤로 젖힐 수 있는지, 가슴을 얼마나 높이 들어 올릴 수 있는지가 중요했다.
하지만 여러 자세를 반복하면서 후굴을 바라보는 기준이 조금씩 달라졌다.
같은 자세라도 어떤 날은 움직임이 편안하고, 어떤 날은 이전에 가능했던 움직임조차 어렵게 느껴졌다.
자세가 깊어졌다고 해서 그 안에서 자유롭게 움직일 수 있는 것도 아니었다.
특히 카포타사나를 연습하면서 이 차이를 분명하게 느꼈다.
손을 발 쪽으로 한 단계 더 가까이 가져갈 수 있었지만, 그 위치에서 다시 머리와 가슴을 들어 올리는 일은 훨씬 어려웠다.
후굴이 깊어진다는 것은 단순히 몸을 더 많이 젖히는 것만은 아니었다.
지금까지 이어온 하타요가 후굴 수련 기록을 돌아보면서 스핑크스에서 시작한 후굴이 어떻게 달라졌는지, 그리고 지금 내게 남아 있는 과제는 무엇인지 정리해보려고 한다.
■ 스핑크스와 코브라에서 처음 배운 것은 가슴을 움직이는 일이었다
스핑크스는 내가 후굴의 기본을 살펴볼 수 있었던 자세다.
엎드린 상태에서 팔꿈치와 전완으로 바닥을 지지하고 가슴을 들어 올리는 움직임은 겉으로 보기에는 단순하다.
하지만 실제로 연습해보면 가슴을 들어 올린다는 말이 생각처럼 쉽지 않았다.
처음에는 상체를 높이 올리는 것에 관심이 많았다.
가슴을 들어 올리려고 하면 허리에 자극이 느껴질 때도 있었다.
코브라를 연습하면서도 비슷한 경험을 했다.
손으로 바닥을 밀고 상체를 들어 올리는 과정에서 가슴을 충분히 움직이지 못하면 허리 쪽에 힘이 집중되는 것처럼 느껴졌다.
나는 코브라를 오랫동안 반복해서 연습했다.
수련을 이어가면서 처음에 느꼈던 허리의 압박감은 점차 줄어들었다.
그렇다고 코브라가 완성되었다고 생각하지는 않는다.
지금도 가슴을 앞으로 길게 보내는 움직임과 어깨를 사용하는 방법은 계속 살펴보고 싶은 부분이다.
다만 처음과 비교하면 달라진 점이 있다.
예전에는 상체가 얼마나 높이 올라갔는지를 먼저 보았다면, 이제는 그 움직임이 어디에서 만들어지는지를 생각하게 되었다.
허리를 많이 꺾는 것만으로 후굴을 깊게 만들려고 하기보다 가슴과 어깨가 어떻게 움직이는지 관찰하기 시작한 것이다.
스핑크스와 코브라는 내게 후굴의 시작이면서 이후의 자세를 이해하는 기준이 되어주었다.
■ 우스트라사나에서는 골반과 가슴의 관계를 생각하게 되었다
우스트라사나를 연습하면서는 스핑크스나 코브라와 다른 어려움을 느꼈다.
바닥에 엎드린 상태가 아니라 무릎으로 몸을 지지하면서 상체를 뒤로 젖혀야 했기 때문이다.
처음에는 손으로 발을 잡고 얼마나 깊게 뒤로 갈 수 있는지가 중요했다.
하지만 반복해서 수련하면서 골반을 앞으로 보내는 움직임과 가슴을 들어 올리는 움직임을 함께 살펴보게 되었다.
골반이 충분히 앞으로 이동하지 않은 상태에서 상체만 뒤로 젖히려고 하면 내가 원하는 가슴의 움직임이 잘 만들어지지 않았다.
그래서 우스트라사나에서는 단순히 뒤로 많이 넘어가는 것보다 골반과 가슴이 어떻게 연결되는지에 관심을 갖게 되었다.
발가락을 세운 상태와 발등을 바닥에 둔 상태에서도 자세를 유지하는 느낌이 달랐다.
손이 발에 닿는다는 사실만으로 같은 우스트라사나라고 느껴지지는 않았다.
몸을 어디에서 지지하고 있는지, 가슴을 어떤 방향으로 움직이고 있는지에 따라 자세의 느낌이 달라졌다.
이 과정에서 나는 후굴의 깊이를 한 부분의 유연성만으로 설명하기 어렵다는 것을 경험했다.
우스트라사나에서 배운 골반과 가슴의 관계는 이후 우르드바 다누라사나를 연습할 때도 계속 생각하게 된 부분이었다.
■ 우르드바 다누라사나에서는 바닥을 미는 힘이 중요해졌다
우르드바 다누라사나를 처음 연습할 때는 바닥에서 몸을 들어 올리는 것 자체가 큰 과제였다.
손과 발을 바닥에 두고 몸을 밀어 올려야 했지만, 처음에는 어느 부분에 힘을 주어야 하는지 쉽게 알기 어려웠다.
자세에 올라온 뒤에도 팔을 펴는 일과 가슴을 움직이는 일이 남아 있었다.
수련을 계속하면서 발바닥으로 바닥을 미는 힘이 중요하다는 것을 느꼈다.
손으로만 몸을 들어 올리려고 할 때와 발로 바닥을 밀면서 몸을 움직일 때의 느낌은 달랐다.
손과 발이 각각 따로 움직이는 것이 아니라 몸 전체를 함께 지지해야 한다는 생각이 들었다.
처음에는 자세에 올라왔다는 사실만으로도 의미가 있었다.
하지만 자세가 조금씩 만들어지면서 새로운 질문이 생겼다.
팔을 편 다음에는 가슴을 어떻게 움직여야 할까?
손과 발 사이의 거리가 가까워지면 후굴이 더 편안해질까?
몸을 들어 올리는 힘과 가슴을 앞으로 보내는 움직임은 어떻게 연결될까?
이런 질문들은 한 번의 수련으로 해결되지 않았다.
나는 같은 자세를 반복하면서 조금씩 다른 느낌을 경험했다.
어떤 날은 몸을 들어 올리는 과정이 무겁게 느껴졌고, 어떤 날은 비교적 자연스럽게 올라올 수 있었다.
같은 날에도 처음 올라왔을 때와 수련이 진행된 뒤의 느낌이 달랐다.
실제로 남겨둔 두 장의 사진에서는 두 번째 자세에서 손과 발 사이의 거리가 조금 더 가까워졌고, 그때는 올라오는 과정이 오히려 조금 더 편안하게 느껴졌다.
이 경험은 내게 중요한 질문을 남겼다.
자세가 깊어진다는 것과 그 자세를 편안하게 움직일 수 있다는 것은 같은 의미일까?
우르드바 다누라사나는 이 질문을 계속 생각하게 만든 자세였다.
■ 깊은 후굴에서는 호흡도 새로운 과제가 되었다
우르드바 다누라사나를 연습하면서 자세의 깊이만큼 중요하게 느낀 부분이 호흡이었다.
비교적 편안한 깊이에서는 자연스럽게 숨을 쉴 수 있었다.
하지만 가슴을 더 앞으로 보내고 후굴을 깊게 만들려고 하면 호흡이 짧아지는 순간이 있었다.
오래 유지하려고 할 때도 시간이 지나면서 숨이 점차 힘들어졌다.
겉으로 보기에는 가슴이 크게 열린 자세인데, 실제로 그 자세 안에서 호흡하는 일은 편안하지 않을 수 있었다.
나는 이 경험을 통해 가슴을 크게 열어 보이는 것과 편안하게 숨을 쉬는 것이 반드시 같은 일은 아니라는 점을 느꼈다.
이전에는 자세를 얼마나 오래 유지할 수 있는지, 얼마나 깊게 들어갈 수 있는지에 관심이 많았다.
하지만 이제는 그 자세에서 자연스럽게 숨을 이어갈 수 있는지도 중요하게 생각하게 되었다.
깊은 후굴을 만든 뒤 숨을 참고 버티는 것이 아니라, 그 안에서도 몸을 무리하게 굳히지 않고 호흡할 수 있는 상태를 찾고 싶어졌다.
이것은 앞으로도 계속 관찰해야 할 과제다.
■ 카포타사나에서는 더 깊이 들어간 뒤의 움직임이 어려웠다
지금 내가 연습하고 있는 카포타사나는 이전의 후굴과 또 다른 어려움을 느끼게 해준다.
처음에는 깊게 뒤로 젖히는 것 자체가 어렵게 느껴졌다.
이후에는 손바닥으로 바닥을 밀면서 머리와 가슴을 들어 올리는 움직임을 연습했다.
몸을 깊게 젖힌 상태에서는 손으로 바닥을 밀어도 상체가 무겁게 느껴질 때가 있었다.
이때는 손바닥으로 바닥을 지지하는 힘과 하체에서 몸을 받쳐주는 힘을 함께 생각하게 되었다.
수련을 이어가면서 손을 발 쪽으로 조금 더 가져가는 단계에도 도전했다.
손이 발에 가까워졌다는 것은 분명한 변화였다.
하지만 그 위치에서 다시 머리와 가슴을 들어 올리는 일은 이전보다 훨씬 어려웠다.
손을 더 깊이 가져갈 수 있었다고 해서 그 자세에서 움직이는 능력까지 함께 좋아진 것은 아니었다.
이 경험은 지금까지의 후굴 수련을 다시 돌아보게 했다.
처음에는 손이 얼마나 발에 가까워졌는지가 발전의 기준처럼 느껴졌다.
하지만 이제는 그 위치에서 다시 움직일 수 있는지도 중요하게 생각하게 되었다.
손을 깊게 가져가는 것과 그 위치에서 가슴을 들어 올리는 것은 서로 다른 과제였다.
지금의 카포타사나는 아직 만들어가는 과정에 있다.
사진 속 자세 역시 완성된 카포타사나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손을 더 가져갈 수 있는 범위가 생겼지만, 그 안에서 머리와 가슴을 다시 들어 올리고 몸을 조절하는 움직임은 여전히 어렵다.
그래서 지금은 무조건 더 깊이 들어가기보다 그 위치에서 무엇을 할 수 있는지 살펴보는 것이 더 중요하게 느껴진다.
■ 후굴을 바라보는 기준이 달라졌다
스핑크스에서 시작해 카포타사나 준비까지 이어진 수련을 돌아보면 자세의 모양은 분명히 달라졌다.
처음에는 바닥에서 가슴을 들어 올리는 것부터 연습했다.
우스트라사나에서는 골반과 가슴의 관계를 생각했고, 우르드바 다누라사나에서는 손과 발로 바닥을 밀어 몸을 들어 올리는 방법을 살펴보았다.
카포타사나에서는 더 깊은 위치로 이동한 뒤에도 다시 움직일 수 있는지가 새로운 과제가 되었다.
하지만 지금까지의 수련을 돌아보면서 내가 얻은 가장 큰 변화는 자세의 깊이 자체만은 아니었다.
후굴을 바라보는 기준이 달라졌다는 점이다.
예전에는 자세가 되면 잘한 것이고, 깊게 들어갈수록 발전했다고 생각하기 쉬웠다.
지금은 같은 자세라도 몸을 어떻게 움직였는지, 어떤 힘으로 지지했는지, 그 안에서 호흡할 수 있었는지를 함께 살펴보려고 한다.
사진을 비교할 때도 단순히 어느 사진이 더 깊어 보이는지만 확인하지 않는다.
그날 처음 올라왔을 때와 수련이 진행된 뒤의 움직임은 어떻게 달랐는지, 자세를 만들 때 어느 부분이 어려웠는지를 떠올려본다.
같은 자세를 반복한다고 해서 매번 똑같은 결과가 나오는 것도 아니다.
어떤 날은 이전보다 편안하게 느껴지고, 어떤 날은 이미 해보았던 움직임도 어렵다.
이런 차이 역시 내 수련의 일부라는 것을 조금씩 받아들이게 되었다.
후굴이 잘되는 날과 잘되지 않는 날을 단순히 성공과 실패로 구분하기보다 그날 몸에서 무엇을 느꼈는지 살펴보는 것이 더 의미 있게 느껴진다.
■ 하타요가 후굴 수련 기록은 끝이 아니라 또 다른 시작이다
처음 하타요가 후굴 수련 기록을 시작할 때는 스핑크스에서 카포타사나까지 이어지는 과정을 정리하고 싶었다.
각 자세를 연습하면서 느낀 어려움과 변화를 하나씩 기록하다 보니 처음 생각했던 것보다 살펴볼 부분이 많았다.
스핑크스와 코브라에서는 가슴을 들어 올리는 움직임을 생각했다.
우스트라사나에서는 골반과 가슴이 어떻게 연결되는지 살펴보았다.
우르드바 다누라사나에서는 손과 발로 바닥을 미는 힘과 가슴의 위치를 관찰했다.
그리고 카포타사나에서는 깊은 위치로 들어간 뒤 다시 움직이는 일이 얼마나 어려운지 경험했다.
이 과정에서 후굴을 깊게 만드는 것만큼 중요한 것은 내 몸이 그 움직임을 어떻게 만들어가는지 이해하는 일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지금도 카포타사나는 완성된 자세가 아니다.
손을 발 쪽으로 더 가져갈 수 있게 되었지만, 그 위치에서 가슴을 들어 올리고 몸을 안정적으로 조절하는 일은 여전히 어렵다.
앞으로는 손을 더 깊이 가져가는 것만 목표로 삼기보다 현재 가능한 위치에서 몸을 어떻게 움직일 수 있는지 살펴보고 싶다.
그리고 그 과정에서 호흡을 자연스럽게 이어갈 수 있는지도 함께 관찰하려고 한다.
처음 후굴을 연습하던 때와 지금을 비교하면 자세의 모양도 달라졌지만, 무엇보다 자세를 바라보는 내 생각이 달라졌다.
예전에는 얼마나 깊이 들어갈 수 있는지가 중요했다.
지금은 그 깊이에 어떻게 도달했고, 그 안에서 무엇을 할 수 있는지가 더 궁금하다.
내게 후굴 수련은 완성된 자세 하나를 얻기 위한 과정만은 아니다.
어려웠던 움직임을 조금씩 이해하고, 그 과정에서 내 몸의 변화를 알아가는 시간이다.
지금까지의 하타요가 후굴 수련 기록은 여기에서 한 번 마무리한다.
하지만 후굴 수련 자체가 끝나는 것은 아니다.
앞으로도 새로운 자세를 서둘러 완성하기보다 지금까지 만들어온 움직임을 조금 더 안정적으로 연결하고 조절하는 과정을 기록해보고 싶다.
스핑크스에서 시작해 카포타사나 준비까지 이어진 이 기록은 내가 얼마나 깊이 젖힐 수 있게 되었는지만 보여주는 이야기가 아니다.
후굴을 수련하면서 내 몸을 바라보는 방법이 어떻게 달라졌는지를 보여주는 기록이다.

댓글
댓글 쓰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