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쉬탕가에서 하타요가로|후굴을 포기했던 이유·오래 머무는 수련·선생님께 묻기

 이번 사진은 후굴 사진이 아니다. 아쉬탕가를 하던 시절, 다리를 넓게 벌리고 앞으로 깊이 숙인 모습이다. 그때의 나는 앞으로는 이만큼 숙일 수 있었지만, 뒤로 젖히는 후굴은 거의 포기한 상태였다.


■ 아쉬탕가 10년, 후굴이 적었던 수련

나는 아쉬탕가 요가를 약 10년 동안 수련했다. 아쉬탕가의 프라이머리 시리즈는 서서 하는 자세로 시작해 앉아서 앞으로 숙이는 자세와 비틀기, 고관절을 여는 자세로 이어진다. 후굴로는 푸르보타나사나와 세투 반다사나, 그리고 마무리 직전의 우르드바 다누라사나가 있었다. 하지만 앞의 두 자세는 비교적 가벼운 후굴이었고, 수업 전체에서 후굴이 차지하는 시간은 앞으로 숙이는 자세에 비하면 많지 않았다.  

그래서 앞으로 숙이는 자세는 매일 반복하며 익숙해졌지만, 가슴을 여는 동작은 잘 되지 않았다. 가끔 우스트라사나를 할 때면 굉장히 힘들었다. 우르드바 다누라사나도 거의 2년 동안 하지 못하다가, 어느 날 겨우 머리를 바닥에서 띄우는 데까지 갔던 기억이 있다.

■ 사진 속 아쉬탕가 시절

요가원 매트 위에서 다리를 넓게 벌리고 머리를 바닥에 댄 아쉬탕가 수련 시절의 전굴 모습


사진은 요가원에서 수련하던 모습이다. 다리를 넓게 벌리고 상체를 숙여 머리를 매트에 대고 있다. 앞으로 숙이는 자세에서는 머리가 바닥에 닿을 만큼 몸이 내려갔다. 이 시절에는 후굴 사진을 남길 생각조차 하지 못했다.


■ 하타요가로 옮기다


다니던 아쉬탕가 요가원이 문을 닫으면서 하타요가로 옮기게 되었다. 하타요가 수업은 분위기가 많이 달랐다. 수업이 천천히 진행되었고, 호흡을 함께 싣지 않으면 자세를 버티기가 무척 힘들었다.


무엇보다 후굴을 피할 수가 없었다. 우스트라사나면 우스트라사나, 우르드바 다누라사나면 우르드바 다누라사나, 한 자세에 몇 분씩 머무는 시간이 많았다. 아쉬탕가에서는 지나가듯 하던 후굴이 이제는 수업의 중심에 있었다.


■ 다른 사람들보다 못하다는 걸 느꼈을 때


후굴 자세에서 오래 머무는 동안 내 부족함이 그대로 드러났다. 다른 사람들보다 내가 훨씬 못한다는 것이 느껴졌다.


그때부터 생각이 바뀌었다. 어떻게 하면 여기서 조금 더 머물 수 있을까. 그 답을 찾고 싶어서 선생님께 자꾸 물어봤다.


오래 머물다 보면 힘이 든다. 그러면 마음속에서 "이제 이 정도면 되겠지" 하며 자세를 풀고 싶은 마음이 올라온다. 그럴 때 선생님은 "시끄러운 마음이 들 때 호흡에 집중하세요"라고 말씀해 주셨다.


자세마다 조언도 조금씩 달랐다. 우스트라사나에서는 가슴을 위로 높이 들어 올리는 데 신경을 쓰라고 하셨다. 우르드바 다누라사나에서는 다리 힘이나 팔 힘 한쪽만 끌어 쓰는 것이 아니라, 다리와 팔, 척추의 힘을 모두 함께 쓰라고 하셨다.


한 번에 답을 얻은 것은 아니지만, 묻고 해 보기를 반복하면서 조금씩 해답을 찾아가는 것 같았다.


그리고 집에서도 연습하기 시작했다. 요가원에서 잘 되지 않았던 부분을 떠올리며 "아, 이 부분이었지" 하고 다시 신경을 썼다. 집에서는 그 부분만 따로 떼어 집중적으로 해 볼 수 있었다. 그렇게 다시 해 보니, 요가원에서는 잘 보이지 않던 해답 같은 것이 조금씩 찾아지는 것을 느꼈다. 그때부터 몸이 달라지기 시작했다.

■  안 되던 부분이 조금씩 달라지는 재미


피할 수 없으니 하나하나 신경을 써 보았는데, 의외로 재미가 있었다. 안 되던 부분에서 아주 조금씩 달라지는 것이 나에게 보이기 시작했기 때문이다.


아쉬탕가를 하던 10년 동안은 후굴을 거의 포기하고 있었다. 하타요가로 옮기고 나서야 후굴을 오래 들여다볼 기회가 생겼다. 내가 남기고 있는 후굴 기록은 모두 그때부터 시작된 이야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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